제가 서른 즈음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맘 졸이며 노래 부른 이후 처음으로 기타를 꺼냈습니다. 20여 년만입니다. 아이의 학교 아빠들의 합창단에서 기타를 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합창단 이름은 '버들치 합창단'이죠. 학교 앞 정릉천에 버들치가 산다고 붙은 이름입니다.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를 서울 한복판에서 보는 것도 비현실적인데, 학교에 아빠들의 합창단이 있다는 건 더욱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올해 저희 집의 14살, 11살 아이 둘이 대안학교로 편입했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가 바로 음악회라고 합니다. 음악회는 학교 아이들이 그간 갈고 닦은 자신의 악기와 합창 실력을 뽐내는 자리입니다. 저희 아이들도 행사를 앞두고 밤낮으로 합창과 바이올린 연습에 분주했지요. 

어느 날, 신편입생 부모 환영식에서 "아버님 혹시 다루는 악기 있으세요?" 하고 한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까마득한 기억을 떠올리며 "기..타...요?" 하고 대답했더니, 바로 합창단의 기타로 차출(?)된 겁니다. 군대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태권도 품증 있는 사람 거수!" 하고 고참이 묻자, 초등학교 3학년 때 땄던 기억이 떠올라 살포시 손을 들었더니, 그날로 한달 간 태권도 조교 교육장으로 끌려갔죠. 아침 구보(달리기)는 앞차기로 연병장 10바퀴씩 돌았고, 취침 점호는 침상에 누워서 옆차기를 하며 번호를 불렀습니다. 

어쨌든, 기타맨으로 차출된 후부터 2주 동안 밤낮으로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를 연습했습니다. 잊고 있던 코드를 꼭꼭 눌러가며 기타를 치자니 손가락이 얼얼합니다. 급기야 왼손 중지와 약지 끝에 물집이 잡혔고, 며칠이 지나자 꾸덕꾸덕한 굳은살이 박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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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 당일, 학교 아이들은 하나 같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순서대로 무대에 오른 아이들몇몇은 간혹 음이 틀리기도 했고, 박자를 놓치기도 했으며, 연주를 하다 멈칫거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성 연주자 못지 않은 실력을 뽐내는 아이도 있었죠. 우리 아이는 연습한 대로 차분히 연주해나갔지만, 중간에 악보를 놓쳤는지 한참을 넋놓고 있다가 다시 되짚어 연주를 마무리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아이가 내 앞에서는 웃어 보였지만 뒤에서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있기에 저는 자리를 슬쩍 피해줬습니다.  

다음 순서는 한 아이 아빠의 첼로 연주였습니다. 그가 연주할 곡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었지요. 그는 매년 음악회 때마다 한 곡씩 첼로 연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전공자이거나 꽤 수준 높은 연주를 할 게 틀림 없어 보였습니다. 혼자 무대 위에 올라 연주한다는 건 그만큼의 실력이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곧바로 그의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시작부터 손을 바들바들 떨며 활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은 잔뜩 굳어 있고, 몸은 경직돼 있습니다. 그는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며 연주를 해나갔습니다. 보는 이까지 가슴 졸일 정도였지요. 그는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고개를 몇 번씩 가로저었지만, 크게 실망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한 아이 아빠가 제게 말했습니다. "저분 처음 무대 설 때는 지금보다 더 떨었어요."

멋지게 연주할 거라고 생각했던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그는 첫 번째 음악회 때 첼로를 처음 연주한 거라고 했습니다. 애초에 첼로를 만져본 적도 없던 겁니다. 음악회를 위해 레슨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왜 낯선 악기를 연주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제 아내에게 이런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온 후,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묻더라는 겁니다. 

"oo아, 너는 어떻게 매년 음악회 때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거니? 정말 대단하다. 아빠도 매년 이렇게 떨리는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