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계시는 본가 마당에는 오래된 능소화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능소화는 벽을 타고오르며 여름부터 가을까지 나팔 모양의 분홍색 꽃을 피워내는 덩굴식물입니다. 30년은 족히 키운 나무이기에 제법 세월이 느껴지죠. 꽃이 피기 시작하는 여름이면 한바닥씩 잎들을 떨구지만, 또 그만큼의 꽃을 피워냅니다. 그 덕에 여름과 가을 내내 실컷 꽃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시로 떨어진 잎들을 쓸어내야 하기에 어지간히 부지런해야 꽃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엔가 능소화나무 아래가 수상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무더기 대신 낯선 물건이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빨간색 외발자전거였습니다. 

‘동춘서커스단이라도 왔나?’

외발자전거는 보통 묘기용으로나 볼 수 있는데 마당에 버젓이 그것도 능소화나무 아래에 놓여 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새 자전거였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다 부엌에 계신 어머니에게 웬 외발자전거냐고 물었죠.

“아니 세상에~ 너희 아버지가 외발자전거를 타시겠다고 사셨단다.”

“네? 아버지가요?”

“당최 나이 칠십이 한참 넘었는데 왜 저러신다니?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자식들 고생시키려고….  철딱서니가 없어요~.”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어느 노인네가 외발자전거 타는 거 보니까 나도 하면 될 것 같은 거여.”

“그래서 사신 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저것도 읍내 자전거포에 없어서 주문해서 어렵게 구한 거여.”

어머니는 한걱정이셨지만 저는 웃음이 먼저 나왔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는 외발자전거에 올라서는 순간, 현실을 깨달으셨다고 했습니다. 엉덩이를 안장에 붙일 수조차 없었던 것이죠.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을 텐데 운동신경도 없는 아버지가 외발자전거를 탈 리 없습니다. 오히려 신이 난 건 저희 아이들이었습니다. 시골에 올 때마다 외발자전거를 연습한다며 기대에 부풀었으니까요. 외발자전거는 그렇게 떨어지는 능소화 꽃잎이 수북이 쌓이도록 제대로 굴러보지도 못하고 나무 아래에서 녹슬어갔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이 지났을까요.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며칠째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기운도 없으시단다.”

외발자전거를 타보겠다고 하던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갑자기 수저도 못 드신다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본가에 가보니 수척하게 야윈 아버지가 능소화 그늘 아래 앉아 계셨습니다. 

“밥맛도 쓰고 걷기도 힘들어. 읍내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라는 거여.”

그날로 한달음에 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 검사를 받았습니다. 당뇨와 고혈압의 합병증세인 ‘콩팥병’이었습니다. 다행히 두 번에 걸친 독한 항생제 처방을 받고 서서히 회복을 할 수 있었죠. 능소화가 세 번의 계절을 더 보내는 동안 아버지는 이런저런 증상으로 병원 다니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올초에는 난청까지 오면서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요. 철 없이 외발자전거를 샀다며 나무라던 어머니도 “이렇게 늙는 건가보다” 하시며 더 이상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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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는 7월에 꽃을 피우는 늦둥이입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봄에 폭죽 터지듯 꽃 피고 진 다음에야 느긋하게 피는 것이죠. 하지만 능소화의 ‘꽃축제’는 푹푹 찌는 8월 한여름을 뚫고 가을까지 이어집니다. 능소화가 두 계절에 걸쳐 꽃 피울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꽃이 지기 무섭게 새 꽃을 피워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시들지 않은 꽃도 미련 없이 뚝뚝 떨어뜨릴 정도입니다. 

올여름도 어김없이 능소화나무 아래 세워져 있는 아버지의 외발자전거 위로 꽃잎이 뚝뚝 떨어질 것입니다. 만약 꽃의 언어가 있다면 능소화는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꽃은 피었다 지는 게 아니라, 지면 피우고 지면 피우는 거여. 그렇게 계속 꽃 피우는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