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 대형쇼핑몰을 다녀왔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식물집사의 발길을 멈추게 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식물마켓 팝업스토어였습니다. 팝업스토어는 일정 기간 동안만 제품을 판매하고 사라지는 매장을 말하지요. 보통 한두 달 정도 운영을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식물을 판매하는 팝업스토어였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10여 개의 부스가 모여 식물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을 번쩍 띄게 한 것은 모든 부스에서 희귀식물로 알려진 몬스테라 알보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몬스테라 알보뿐 아니라, 다양한 희귀식물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식물들이 이제는 부스마다 한두 포트씩은 판매할 만큼 ‘흔한 희귀식물’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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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야말로 광풍이었습니다. 잎 1장에 80만 원이 넘어도 꼭 사야 했던 식물이 있었으니, 바로 몬스테라 알보(Monstera Deliciosa var. Borsigiana Albo variegata)였습니다. 식테크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자, 수많은 식물집사에게 상사병을 안겨준 주인공이죠. 몬스테라 알보는 녹색 바탕의 잎 위에 하얀색과 연녹색의 줄무늬가 올려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식물입니다. 새 잎이 나올 때마다 무늬의 패턴이 일정하지 않은 것도 큰 매력이고요. 저 역시 이 아름다운 식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비현실적인 외모만큼이나 식물 값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8만 원도 비싼 거 아닌가? 80만 원이라니? 그것도 잎 1장에?’

아무리 식물을 좋아한다지만 몬스테라 알보에게 다가가기에는 그 문턱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희귀식물을 콜렉션하는 목적도 있지만, 사람들이 식테크를 위해 이 식물을 구매한다는 것이었죠. 몬스테라 알보의 잎 1장을 사서 잎이 2장이 될 때 1장을 잘라서 뿌리를 내려 분양 보내면 원래 샀던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식물이 커지면 가지치기를 해서 버리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자란 식물의 잎을 잘라 다시 팔 수 있다니? 그것도 샀던 값 그대로? 운이 좋으면 샀던 값보다 더 비싼 값에? 한때 식물집사들 사이에서는 몬스테라 알보의 새 잎이 1장 나올 때마다 ‘돈이 자란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이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죠.  

원예시장은 이미 공장화된 지 오래인데, 줄기를 잘라 파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식물이 유통된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식물은 돌연변이이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불가능했습니다. 몬스테라 알보의 학명에서 이 식물의 족보를 짐작할 수 있거든요. 이 식물은 몬스테라 델리시오사의 변종인 ‘보르시지아나’라는 이름의 몬스테라입니다. ‘몬스테라 델리시오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몬스테라의 학명이고요. 보르시지아나는  몬스테라 델리시오사와 잎의 형태는 비슷하지만 크기는 조금 더 작고, 직립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보르시지아나’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죠. 이 식물은 이미 보르시지아나라는 이름의 변종으로 태어났는데, 여기에 또 한번 변이가 일어납니다. 바로 ‘알보 바리에가타(albo variegata)’라는 유통명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라틴어로 ‘흰색 무늬’라는 뜻입니다. 

식물의 잎은 대부분이 녹색입니다. 광합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가끔 잎에 하얀색이나 아이보리색, 노란색이 섞인 돌연변이 개체들이 태어납니다. 잎에 녹색이 적으면 광합성을 덜 하게 됩니다. 그럼 더 많은 빛을 필요하게 되죠. 돌연변이 개체들은 그만큼 생존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돌연변이는 도태되기 쉬운 조건으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돌연변이라고 해서 열성인자가 모두 후대에 유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몬스테라 알보는 후자였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식물은 두 번의 변이를 거친 탓에 열매를 맺고 씨를 뿌려도 결코 하얀색 무늬의 자손이 태어나지 않았죠. 이 아름다운 돌연변이가 대대손손 유전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면 우리는 저렴한 값에 이 식물의 무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몬스테라 알보가 씨앗으로 유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천에 널린 것이 하얀색 무늬 식물이었다면, 오히려 광택 나는 녹색 잎의 몬스테라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현재 몬스테라의 세계에서는 단연 하얀색 무늬가 예쁘고 희귀한 식물이 되었습니다. 조직배양이라는 첨단의 ‘클론 복제’ 기술로도 몬스테라 알보의 무늬는 쉽게 대량 복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몬스테라 알보는 최초의 누군가가 남미의 밀림을 헤매다 발견한 단 하나의 돌연변이였을 것입니다. 그 누군가는 잎이 한 장 한 장 나올 때마다 줄기를 잘라 뿌리를 내렸을 것이고, 그렇게 번식해오던 것이 바다를 건너와 지금 우리의 화분에 정착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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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희소성 탓에 몬스테라 알보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늘어만 갔습니다. 하지만 몬스테라 알보를 파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식물 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였죠. 하지만 제아무리 줄기를 잘라 천천히 번식을 한다 해도, 세대를 거듭하면 자손의 숫자는 불어나기 마련입니다. 공급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식테크 수단으로 각광을 받던 몬스테라 알보였지만, 공급이 늘어나면서 식물 가격도 오르락 내리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금 시세처럼 공급 물량이 풀리면 가격이 떨어졌고, 한번 풀리고 나면 다음 번식 때까지 공급이 줄면서 가격은 올랐습니다. 

대량공급이 힘든 희귀식물은 소수의 마니아들이 콜렉션하며 즐기던 작은 규모의 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몬스테라 알보가 선봉에서 깃발을 흔들며 식테크와 ‘콜라보’를 하자, 새로운 수요가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균형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새로 유입된 수요자는 잠재적인 공급자이기도 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폭발한 수요만큼 공급도 폭발했습니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다른 희귀식물의 가격도 함께 폭락했습니다. 몬스테라 알보 역시 더 이상 식테크의 상징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몬스테라 알보가 몰고온 희귀식물의 광풍 덕에 식물집사의 저변은 넓어졌습니다. 식물 취향의 스펙트럼은 세밀해졌지요. 수요자가 또 다른 공급자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먼은 1970년대에 이러한 현상을 쇼셜 컨택트(Social Contact)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쇼셜 컨택트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와 상호작용을 의미합니다. 사회적인 연결과 네트워크가 경제적인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라는 뜻이지요. 저변이 확장되면 그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세분화되면서, 오히려 더 단단한 마니아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차례의 식물 버블의 붕괴가 있었지만, 희귀식물의 수요는 꾸준하게 단단한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성숙해진 느낌마저 듭니다. 식물 앞에서 조급해하고 닦달하던 마음에서, 이제야 식물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느낌이 드는 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